대선 후보들 정책과 공약 수두룩한데 농업농촌 분야는 비교조차 어려워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17일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나는 선거권을 얻은 이후 총 세 번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는데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긴 생각해보면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총선이고 지방선거이고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괜한 오기였을까, 당선가능성 같은 것은 별로 고려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설사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그 후보가 한 표라도 더 얻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한 발짝 나아가게 하는데 씨앗이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명박근혜 정부 10여 년을 견디는 것은 정말 혹독한 일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뒤로 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이래저래 고민이 된다. ‘누구를 뽑아야 할 것인가?’ 과연 누구를 뽑아야 10년 후, 20년 후 또 다시 이런 글을 쓰게 됐을 때 ‘그 때 내가 참 현명한 선택을 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대선에서조차 ‘찬밥’인 농촌

그래서 주요 후보들의 공식누리집을 한번 들어가 보았다. 내가 사는 곳이 농촌이기도 하고 농업이야말로 국가의 근간산업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믿기에 지지할 후보를 선택하는데 각 후보의 농업농촌 관련 정책과 공약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호 1번 문재인 후보부터 2번 홍준표, 3번 안철수, 4번 유승민, 5번 심상정 후보까지, 저마다 ‘나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외치듯 누리집 가득 분야별 정책과 공약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 걸...현재로선 각 후보들의 농업농촌 정책을 ‘비교 평가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소감이다.

누리집 상으로 봤을 때, 그나마 심상정 후보 정도만 농업농촌 관련 정책과 공약을 알리는데 공을 들였지 다른 후보들은 구색 맞추는 수준으로 농업농촌을 언급할 뿐이었다. 문득 얼마 전 지역의 한 농민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털어 놓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농민 표가 우스운 거지. 그래도 나 젊었을 땐 지금보다 농민이 훨씬 많았으니까 당이 어디든, 후보가 누구든 ‘나도 농민의 자식이다’ 이러면서 밀짚모자 쓰고 농사짓는 시늉이라도 하며 사진 찍어 홍보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누구 하나 그러지를 않잖아?” 맞는 말씀이었다. 농업농촌은 대선에서조차 찬밥 신세인 것인가 속이 상한다. 특히 이번 대선은 다른 무엇도 아닌 촛불혁명의 힘으로 부정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치르는 것이 아니던가? 그 촛불을 지켜내는데 전국 각지의 깨어있는 농민들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을 쏟았는지 알기에 속상한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우리나라 농업예산이 국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결코 높은 편이 아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업 예산 비중을 10%까지 확보하겠다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으며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이 6.5%정도 수준이었다. 10%를 약속해도 지켜내지 못하는 판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상황은 안 봐도 뻔한 것 아니겠는가?

이후 두 정권을 거치며 국가 예산이 300조, 400조 원을 넘어섰지만 다른 분야 예산 증가에 비해 농업 예산 증가율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현재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업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농업 예산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식의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이 나라 정부조차 ‘경쟁력 지상주의’라는 틀 속에서 우리 농업을 바라보며 경쟁력이 없으므로 곧 예산 투자도 아깝다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농업, 국가의 근간 산업으로 천명하라

바로 그러한 시각이 주류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농업, 농촌 그리고 농민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을 얼마를 썼든 농민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면, 농업으로 먹고 살기엔 점점 힘들어지고 농촌은 점점 더 황폐해져만 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기존의 국가 농업 정책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근본적으로 되짚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된 주요 대선 후보들의 농정공약은 여전히 농업 관련 일부 단체들을 달래는 수준 혹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농업농촌에 관한 철학의 부재라고나 할까?

스위스의 경우 1996년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활성화하고 생태 농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지불로 농가를 보상할 수 있다는 근거를 헌법에 명시했다고 한다. 시장 경제 하에서는 결코 유지할 수 없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국민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편익을 지켜내기 위해선 그만큼의 국가 예산 투입이 필요하고 그러한 국가의 행위를 국민투표를 거친 헌법이 지지해주고 있는 것이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잡든 대한민국 헌법은 개정 절차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주요 대선 후보들은 단지 농업 예산 비중을 조금 늘리는 것으로, 이런저런 보조금 제도를 더 만드는 것으로 농업농촌을 달래려 할 것이 아니라 농업을 국가의 근간 산업으로 다시금 천명하고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에 그를 지키기 위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꿈같은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 수준의 의지가 아니라면 고사 직전에 놓인 우리 농업농촌을 살릴 방안이 도저히 마련되지 않을 것 같기에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토로해본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