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J레미콘사 수해현장 허위납품서 내부고발
빈차로 ‘동네한바퀴’- 민간 축사에 무단 반출도

청주지역 수해복구 공사 현장에서 특정 레미콘 회사가 허위 납품서로 관급물량을 부풀리거나 외부반출한 의혹이 불거졌다. 회사의 조직적인 부정행위에도 불구하고 현장 감독기관인 지자체의 감시시스템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공무원들이 한정된 인력으로 전표만 확인하는 현실에서 관급 레미콘 빼돌리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레미콘 운송차량 기사들의 경찰 고발로 불거진 관급 레미콘 비리 현장을 취재했다.
 

축사 진입로와 주택 앞마당에 무단반출돼 타설된 레미콘

지난 8월 청주 J레미콘에서 일했던 레미콘 차량 기사 5명이 청주 상당경찰서에 회사를 상대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내용은 낭성면, 현도면, 가덕면 일대의 수해복구 현장에 관급 레미콘을 납품하면서 허위로 납품서(전표)를 만들어 납품량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허위납품서 20여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실제로 허위납품서에는 불과 30분 사이에 미원 성대리와 낭성 삼산리에 납품한 것처럼 2장을 작성하기도 했다.

고소인으로 참여한 A기사는 “지난 6~7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회사에서 허위납품서를 건네주면 빈차로 회사앞 300m 떨어진 교차로에서 되돌아오는 식으로 시늉만 했다. 이걸 우리 기사들은 ‘동네 한바퀴’라고 빗대서 얘기하는데 아예 허위 전표에 ‘동네한바퀴’라고 자필로 쓴 것도 있다. 관급 레미콘이면 나라 재산인데 이런 식으로 ‘봉이 김선달’처럼 해먹어도 되나? 싶었다. 회사에서 이것도 탕수(운송 건수)로 인정해 운송비(임대차 2만7500원, 지입차 4만1000원)를 주니까, 우리도 수입이 늘어나긴 했지만 영 찜찜했다”고 말했다.

회사 앞 300m 되돌아오면 ‘한탕’

‘찜찜했던’ 기사들이 J레미콘사의 조직적인 납품조작을 폭로하게 된 계기는 운송비 단가였다. 7월말 운송비 단가 조정과정에서 회사측이 제시한 금액을 기사들이 거부하자 일방적으로 계약서 작성 마감을 통보했다. 이에 기사들이 집회신고를 하고 단체행동에 나섰고 이때 각자가 갖고 있던 100여장의 허위납품서를 모았다는 것.

A기사는 “처음엔 임대차·지입차 합쳐 25명이 참여했는데 나중에 회사쪽에서 회유를 했는지 빠져나가기 시작해 5명만 남았다. 허위납품서도 100여장 갖고 있었는데 집행부가 빠져나가면서 20장 정도만 남았다. 우린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다른 레미콘 회사에 취업할 수도 없었다. 나라 재정을 빼먹는 비리는 처벌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경찰에 고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청주 일대는 시간당 200mm의 국지성 폭우가 쏟아져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청주시지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수해 복구비를 긴급 지원했다. 또한 전국의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청주를 찾아 재난 복구에 힘을 보태줬다.

피해 복구예산은 어림잡아 1051억원에 달했고 복구공사는 올 해에도 이어져 총 30억여억원이 투입됐다. 수해복구 사업은 소하천 제방공사, 교량 공사, 도로 공사가 주를 이뤘고 상당량의 레미콘이 소요됐다. 수해가 큰 현장은 미원, 가덕, 낭성면이었고 복구공사 현장과 가까운 J레미콘사가 관급물량의 상당부분을 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J레미콘사는 허위납품서로 부당청구를 한 것 이외에 일부 민간 축사와 주택 앞마당 등에도 불법 반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운송기사의 제보에 따라 낭성면 문박리 한 축사를 찾아갔다. 지난 5월께 축사 진입로와 바닥에 J레미콘차량 15대 분량(시가 800만원 상당)을 불법 타설한 현장이었다. 취재진이 방문해 보니 50여m의 축사 진입로가 깔끔하게 콘크리트 포장된 상태였다.

축사 주인은 수해복구용 레미콘을 깔았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때 현장 일을 하던 업체 사장님이 레미콘이 남는다고 진입로에 깔아주겠다고 해서 한 것이다. 원래 수해복구공사 설계에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남아서 축사바닥에도 일부 깔아줬다. 돈을 준거는 없고 고마워서 일꾼들에게 돼지 2마리를 잡아줬다”고 말했다.
 

30분 사이에 미원-낭성 2곳을 다녀온 것처럼 작성된 허위납품서

또한 레미콘 타설을 지시한 현장 하도급업체 사장은 “우리 현장소음 때문에 소 2마리가 유산됐다고 항의를 하고 공사를 막겠다고 해서 급하게 관급 레미콘으로 포장을 해준 것이다. 나중에 부족한 레미콘을 내 돈으로 사급으로 사서 보충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애초부터 사급 레미콘을 썼어야 하는데 워낙 공사가 급해서 우선 관급을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가덕면 금거리의 주택 마당에도 J레미콘사 차량 6~7대분의 레미콘을 타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주택에 살고 있는 주민은 취재진에게 “올 여름쯤에 어디서 와서 깔아준 것은 맞다. 돈을 얼마를 줬는 지 누가 깔아줬는 지는 남편이 알고 있는데 일하러 갔다”고 답했다. 낭성면 추정리 계곡 상류에도 레미콘 3대 분량을 작업장 바닥에 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이 현장확인한 3건은 A기사 한사람이 각 현장소장의 지시에 따라 무단 반출한 것이다. 따라서 레미콘 차량기사 전체로 확대할 경우 불법 사례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자체 감독부실, 건설사 공모의혹

J레미콘사 총괄이사는 “허위납품서 건은 경찰이 요구하는대로 자료를 제출해 수사가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입장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현장 인근 주택에 무단반출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공사 현장책임자가 어떤 지시를 내려 그랬는 지는 몰라도 우리 회사와는 무관한 일이다. 회사차를 임대해 운전하는 기사들은 정식 직원은 아니고 도급사업자라고 할 수 있다. 회사와 계약을 통해 운행횟수만큼 운송비를 받아가는 구조다. 노동법상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긴급 수해복구공사는 시급하게 공사가 진행되다보니 정확한 자재량을 산출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또한 청주시는 재난지역으로 선포돼 정부의 복구예산 지원이 원활했다. 그러다보니 청주시가 관급 자재량을 넉넉하게(?) 설계했을 가능성이 있다. 레미콘의 경우 소요량을 설계해 조달청에 의뢰하면 레미콘협동조합을 통해 각 회사로 배정되는 구조다.

레미콘 회사에서는 공사현장이 마무리되면 배정량이 남았더라도 그때까지 납품량만 검수받아 조달청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J레미콘사는 허위 납품서를 통해 배정량을 다 채운 것처럼 대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사건을 수사중인 상당경찰서측은 “고발인 조사를 마치고 업체 측으로부터 차량 출납기록이 담긴 컴퓨터와 GPS, 관련 자료 등을 제출받았다. 문제의 허위납품서가 청주시에까지 접수됐는 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동네한바퀴’라는 납품서를 만든 건 사실인데 몇장이나 만들었고 부당하게 대금을 청구했는 지 여부는 피고발인측 조사를 해봐야 나올 것 같다. 현재 사건이 밀린 상태라서 피고발인 조사가 다소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발인 A기사는 “레미콘 납품서는 공사현장 책임자로부터 인수자 사인을 받아야만 유효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노릇인지 현장책임자들이 사인을 잘 안해주고 그걸 회사로 가져가면 그냥 받아줬다. 나중에 일괄적으로 사인을 받는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한차 한차 확인없이 이런 식으로 뒷구멍으로 일괄 사인해 주면 얼마든지 빼먹을 수 있단 얘기다. 경찰에서 국고 도둑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수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경기도 포천시에서 레미콘을 불법으로 빼돌린 업체와 이를 묵인해준 건설회사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포천경찰서는 모 레미콘회사 이모(48) 본부장과 건설업체 22곳의 대표와 직원 53명 등 모두 54명을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이 본부장은 2012년부터 3년간 포천시에서 발주한 관급 공사 현장에 조달된 레미콘 2천㎥를 수차례에 걸쳐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각 건설회사들은 레미콘이 정상 출고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레미콘업체의 자재 유출을 도왔다. 관급공사라서 금전 손해가 없다보니 건설사들이 레미콘 회사의 불법에 선뜻 공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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