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시절 거치며 교사의 길 35년간 걸어
아이들 마음 보듬고 알아주는 교사가 ‘참교사’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간다①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종종 하는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교육문제만큼 풀기 어려운 문제가 또 있을까?

수많은 제도개편과 변화를 위한 노력은 있었지만 여전히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또 교사는 교사대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교육계만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교육과 사회문제는 뒤엉켜 그 누구도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충북인뉴스에서는 ‘그 어려운’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교육의 본질을 다시한번 보고자 한다. 교육의 기본이 무엇이었는지, 평생 교육계에서 몸담았던 교육계 원로들로부터 듣는다.

 

<전 은여울중학교 이옥영 교사 인터뷰>

 

전 은여울중학교 이옥영 교사

 

새벽 4시 30분. 몸은 천근만근, 머리는 비몽사몽, 그래도 돈 가방만큼은 잊지 않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서둘러 오늘 코스를 확인한 후 ‘오라이’라는 힘찬 외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승객들의 등을 우겨넣으며 갔던 길을 또가고, 갔던 길을 또가고……. 그렇게 모두 ‘열두탕’을 뛰고 나서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된 일과는 밤 12시나 돼서야 끝난다.

교통수단이라고는 오로지 버스, 기차가 전부였던 시절,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오라이’를 외치며 승객을 내려주고 태워줬던 버스안내양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 버스는 배움과 돈이 없었던 소녀들의 일터이기도 했다.

지난 2월 말 은여울중학교를 끝으로 35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이옥영 교사. 그녀의 전직은 버스안내양이었다.

요즘 교사하면 소위 상위 1~2%안에 드는 공부 잘하는 교대생,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잘 자란 사범대 학생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배움과 돈이 부족했던 시절, 이옥영 씨는 버스안내양을 하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

“8살에 어머니, 1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땄어요. 자존감 바닥에다가 기댈 곳이 없었어요. 믿을건 공부뿐이었지요.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형편은 안되고……. 잠도 재워주고 돈도 주는 버스안내양 생활을 하며 대학시험을 봤죠.”

버스안내양 생활을 하며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1980년 이옥영 씨는 ‘안내양 대학합격’, ‘역경을 딛고 대학에 입학하다’는 타이틀로 당시 신문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옥영 씨가 버스안내양 생활을 하며 대학입학 시험에 합격하자 당시 신문지면에 이 씨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했다.

 

버스안내양 이후엔 대농여공으로 일했다. 대농은 당시 청주시민을 먹여 살린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소위 ‘잘나가던 방적공장’이었지만 그만큼 고단함도 있었다. 수많은 소녀들이 그곳에서 울고 웃었다.

낮에는 대농에서, 밤에는 청주대 국문과에서 공부하며 그렇게 이 씨는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반일 때 양백여상으로부터 교사로 일해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고민할 것이 없었지요. 누구보다 제가 그들을 잘 아니까요”

양백여자상업고등학교는 대농 부설중·고등학교로 당시 배움에 목말랐던 여공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옥영 씨는 버스안내양, 대농여공, 청주대 학생에 이어 양백여상 교사의 삶을 시작했다.

“양백여상 교사로 15년 6개월 동안, 정말 뜨겁게 살았던 것 같아요. 양백여상 학생들은 몸과 마음이 피곤한 소녀들이라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마음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도요. 지식전달보다 마음을 보듬어 주려고 노력했어요.”

이옥영 씨는 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재밌게 수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주고 꿈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학업을 이어가게 할 수 있을까?’

밤 2~3시까지 교수안을 짜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연히 학습보다는 정서와 인성교육이 우선되었다.

물론 문제가 없는 날은 없었다. 피곤하고 지친마음도 있었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학생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만큼 힘도 났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은 덕이었다.

“눈을 마주치고 마음을 읽어주면서 공감해주면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이쁘다고 말해요. 그만큼 서로 통한다는 뜻이죠. 그럴 때 교사는 힘을 얻어요. 교육공동체가 다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교사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보듬는 노력이 필요해요. 선생님은 안정된 직장인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임용고시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머리가 발달한 사람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교과수업을 멋지게 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마음으로 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임용고시 제도는 마음보다 머리가 똑똑한 사람을 선발하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우수한 인재가 교사가 되는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우수한 인재인 선생님들께서 사람을 이해하고 학생들을 가슴으로 품는 방법을 함께 익힌다면 학교현장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퇴직후 (사)전국교사힐링상담센터라는 곳에서 제 2의 인생을 설계하고자 한다. 그곳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마음을 보듬어 주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사실 교사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또 그만큼 자주 잊는 말이기도 하다.

이옥영 씨는 “요즘학교가, 또 요즘교육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지만 교사라면 이 말을 늘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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