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간다 ③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종종 하는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교육문제만큼 풀기 어려운 문제가 또 있을까?

수많은 제도개편과 변화를 위한 노력은 있었지만 여전히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또 교사는 교사대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교육계만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교육과 사회문제는 뒤엉켜 그 누구도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충북인뉴스에서는 ‘그 어려운’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교육의 본질을 다시한번 보고자 한다. 교육의 기본이 무엇이었는지, 평생 교육계에서 몸담았던 교육계 원로들로부터 듣는다.

 

<김성장 시인 인터뷰>

 

김성장 씨.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실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만큼 헤맸다. ‘괜한 질문을 던졌구나’라는 후회감도 밀려왔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이고, 보편적 교육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또 그토록 중요하다고 외치는 미래사회 인재를 위한 교육은 무엇인가?’ 단순한 질문이지만 결코 단순하게 답할 수 없었고, 중요하지만 현실에선 답을 찾기 어려웠다.

김성장 교사. 

며칠을 헤매던 중 김성장 교사를 알게 됐다. 

보충수업 반대투쟁을 위해 1997년 충북도교육청 정문 앞에서 4살, 2살배기 자녀를 포함해 온 가족이 텐트를 치고 농성했던 사람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물론 그는 현재, 교사는 아니다. 교사보다는 시인으로 불린다.

2014년 전 교육계를 떠나, 문화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시로 만든 집 14채/창비교육’에 이어 올해는 시집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걷는 사람’을 펴내기도 했다. 

현재는 신영복 글씨 쓰기 관련 책을 집필 중에 있으며 세종시 어진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매주 2회 글씨 강의를 하고, 서울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신영복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인이자 서예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교사시절 이야기는 20년이 넘은 지금도 교육계에서 회자된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깊이 고민하고 실천했던 사람. 당시에는 생소했던 토론수업을 교실에서 실천했으며 다른 교사들에게 알리기 위해 책까지 출판했던 사람. 학교가 있는 ‘시골’ 마을로 이사해 거주하며 학부모, 지역주민들과 스스럼없이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던 사람.

얼핏 ‘평범하지 않은 교사?’, 속된 말로 ‘똘끼 있는 사람’ 쯤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은 교육의 본질, 미래사회에 적합한 교육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창의 융합형 수업, 감수성을 키우는 문화예술 교육, 협업능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토론수업, ‘학교 안 개구리’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교사의 모습 등등 그의 삶속에는 미래교육의 키워드라 불리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물론 그는 현재 미래교육, 교육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래교육이요? 하하하. 전 잘 몰라요. 그냥 그게 교육이니까요.”

 

교육은 학생이 직접 경험하고, 만들어보고, 변화를 느끼는 것

그의 학창시절은 요즘 교사들과는 많이 달랐다.

금오공고출신, 특별한 기술없이 고등학교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노동판’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를 꿈꾸던 학생도 아니었고 상위 1, 2%안에 드는 ‘고급 두뇌’도 아니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용접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돈도 안 벌리고.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그래서 한 거예요.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찾기 위해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은 좀 쓴다는 말을 들었으니 국어교육과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어찌 보면 단순한 생각으로 교사의 길을 택했다고 할 수 있죠.”

김성장 교사는 그렇게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시절 인간과 교육, 사회에 대해 공부했다. 교사로 나아가기 위해 ‘교과공부’ 대신 시와 문학을 노래하고 교육과 인간에 대해 고민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진보니 보수니 구별 짓기보다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천했다.

보충수업거부 투쟁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옥천군 청산중학교 재직 시절 보충수업의 불필요성을 절감했단다.

용어상으로 보자면 보충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보충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수업임에도 당시에는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고 그 부작용으로 고통 받는 학생들을 목격해야 했으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2000년대 초반 쓰여진 그의 시 ‘혹시’에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의 절절함이 묻어있다.

‘일찌감치 무소유를 깨달은 부처님, 아무거나 공용으로 쓰고 버리는 공용주의자, 자고 싶으면 자고 가고 싶으면 가는 아나키스트, 그래도 끈질기게 학교에 와서 저항하는 혁명가’ 그가 표현한 학생의 모습이다. 

“전교조에서도 보충수업 거부투쟁을 했었죠. 하지만 전 전교조 정책에 동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니까 했을 뿐이에요. 아이들을 위해서.”

토론위주 수업,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는 활동 등 그가 시도했던 수업의 변화 또한 같은 이유다.

직접 학생들이 몸을 움직여 경험하고, 만들어보고, 그 속에서 변화를 느낀다는 것. 그에게 교육이란 그런 것이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 ‘공부는 도대체 언제 할꺼냐?’라는 항의도 종종 받았지만 그의 단순하면서도 또렷한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IT기술이나 비싼 기자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직접 만들어보는 활동,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시간, 이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인내만 있으면 됐다.

“그 당시에도 수업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교사들은 많았죠. 하지만 대부분은 생각 속에서만 머물렀고 실제 행동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요즘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작고 초보적인 수준의 활동이라도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996년 김성장 교사가 발간한 ‘살아있는 모둠토의수업 방법 10가지’에는 요즘 교육현장에서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공동창작 △설문조사 △사진을 이용한 글쓰기 △인물 찾아 면담하기 등 다양한 수업모델이 있다.

교사 신분으로 옥천지역에서 민예총을 설립해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 활동, 보수언론 반대운동 또한 ‘특이한 이력’으로 꼽힌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교사생활이었지만 그는 주민 학부모들에게 서예를 가르쳐주고 스스럼없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역과의 연계니, 행복교육지구사업이니 당시 그런 용어는 없었지만 지역주민들과 교류하고, 학생들의 사회적 문해력을 향상시키며, 민주시민의 토대를 키우는 활동은 그의 교직생활 25년을 관통한다.

 

교사로부터 나오는 교육의 변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미래교육, 대안교육, 역량교육이라는 말을 빌어 교육계도 변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래서 교육학자들은 교육의 본질과 보편적 교육, 선진미래교육을 찾기 위해 외국의 사례를 공부한다. 미국, 독일, 덴마크, 핀란드의 좋은 제도와 정책을 우리나라에 이식해 적용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식의 부작용만 남길 뿐 또 다른 숙제만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성장 교사.

그의 삶을 되돌아보니 교육의 본질, 보편적 교육은 어쩌면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 미래교육의 키워드는 어쩌면 ‘미국, 독일, 덴마크, 핀란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김성장 교사처럼 아이들을 위해 현장에서 실천하고 바꾸는 교사, 한명 한명의 삶속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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