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핵심조항 빠져…개악도 개선도 아냐” 의회에 화살
도의회 “집행부 반대불구 이만큼 노력했는데” 억울함 토로

충북도내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이하 비정규직운동본부)와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가 18일,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충북도의회가 발의한 ‘노동자 권리보장 조례 및 비정규노동자 권리보장 조례안’을 두고 문제제기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노동계와 도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노동정책 노론회)

 

노동인권조례 하나 없는 ‘노동인권불모지’를 개선하겠다며 의기투합했던 노동계와 일부 충북도의원들이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

최근 ‘제1호 충청북도 노동관련 조례’가 발의됐지만 이를 계기로 양측의 관계가 오히려 악화됐다.

노동계는 최근 발의된 ‘비정규직 근로자 조례’와 ‘근로자 권리보호 조례’에 대해 “인권보호 핵심 조항이 빠진 누더기 조례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례를 발의한 충북도의회 측은 “일부조항에 대한 이시종 지사 등 집행부의 반대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결과”라며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수 있는데 비판의 강도가 너무 심하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노동계의 비판이 조례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던 이시종 지사가 아닌 의회에 쏠리면서 해당 조례를 추진한 의원들이 오히려 뺨을 맞은 상황. 결과만 놓고 보면 차라리 아니한 만 못한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충북도의회 노동관조례 1‧2호 발의

제1‧2호 의안 발의했지만 갈등은 커져

 

지난 17일 충북도의회 산업경제위원회는 하유정, 이상정 도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충북도 근로자 권리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안’(이하 근로자권리보호조례)과 ‘충북도 비정규직근로자 권리보호 및 지원 조례안’(비정규직권리보호조례)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날 의결된 근로자권리보호조례는 △근로자의 권리보호, 복지증진과 지원을 위한 시책 추진을 도지사의 책무로 규정 △비정규직 및 저임금 근로자 등 취약근로자를 비롯한 일반 근로자의 권리보호 및 증진을 위한 노동정책 기본계획의 수립·시행 △기본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의 이행여부 점검·평가, 근로자의 권리보호 및 증진을 위한 교육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권리보호조례에는 △노동인권 보장 및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유지하기 위한 도지사의 책무 규정 △비정규직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 및 권리보호를 위한 종합계획의 수립 △비정규직근로자 등의 고용환경 개선, 부당한 계약해지 금지와 차별처우 금지 △도지사의 민간부문 장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차별해소를 위한 대책 수립과 시행 권고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충북도는 그동안 노동관련 조례하나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국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부서를 둔 것과 비교되면서 ‘노동인권의 불모지’란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하유정‧이상정 의원이 각각 발의한 조례는 충청북도 노동관련 조례 제1‧2호가 된다.

논의 과정도 상호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충북도의회 산업경제위원회와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이하 비정규운동본부)와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지난 해 11월 7일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보장 제도와 정책마련 토론회’를 공동으로 추죄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는 충북도의회 역사상 처음 열리는 ‘노동정책토론회’ 였다. 이후에도 비정규운동본부의 도의원들은 여러 형식을 통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계 “5G 시대에 2G 내놓고 생색”

‘노동조사관’제 제외 등 핵심 내용 다 빠져

 

이렇게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조례안이 상임위를 통과하자 비정규운동본부 등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비정규운동본부는 지난 1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충북도의회 산업경제위가 17일, 수정 발의해 통과시킨 조례안은 비정규직운동본부가 제출한 2개 조례안의 핵심 내용인 '권리보호를 위한 충청북도의 책무'를 외면한 형식만 남은 조례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도의회는 애초 비정규직운동본부와의 논의를 통해 연초 원안 상정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며 "4월 임시회의에서는 생활임금 조례를 제외한 2개 조례안에 대하 원안 상정하겠다는 입장도 밝힌바 있지만 결국 의회 상정 조례안은 원 조례안을 변경하고 축소, 삭제한 내용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례에 대해 “한마디로 ‘노동조례’라는 형식만 남기고, 실질적인 권리보호를 위한 책무는 외면했다”며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해 비판했다.

노동계는 “노동자권리보장 수정 조례안은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다수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조례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근로자권리보위원회>의 기능은 축소했다”고 봤다.

위원회 구성에 사용자단체를 포함한 것을 두고 “사실상 권리보호를 위한 계획과 시행이 아닌 노사간의 조정으로 위원회 역할을 변경”한 것으로 해석했다.

노동계가 가장 문제를 삼은 부분은 ‘노동조사관 규정’. 이들은 “<원안>의 핵심 내용인 ‘노동조사관’ 규정을 아예 삭제함으로 노동자권리보장 조례 제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반발했다.

비정규직 권리보장 조례안에 대해서도 “(비정규운동본부가 제출한) 원안 대부분을 수정했다”며 “조례의 적용범위에서 용역, 도급, 위탁 등 간접고용 노동자 대부분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한 <비정규직 사용심사제도>도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운동본부 관계자는 “충북이 가장 늦게 조례를 만들었지만 오히려 가장 좋은 조례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며 “시대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데 도의회는 10년 전에 만들어진 조례, 그것도 핵심조항은 빠진 것을 가지고 왔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세상은 4~5G시대인데 2G 핸드폰을 가지고 온 셈”이라고 밝혔다.

 

“노동정책연구회까지 만들었는데”

노동계 비판에 서운한 충북도의회

 

노동계의 비판에 대해 조례안을 발의한 도의회측은 서운하다는 입장. 이상정 도의원은“동지적 관계로 생각하고 있는 노동계의 비판이기에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그동안에 있었던 어려움도 밝혔다. 이 의원은 “조례를 발의하는 과정에서 핵심 사항에 대해 ‘원안 통과시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할 정도의 집행부의 심각한 반대가 있었다”며 “발의 일정상 이번 회기상정을 포기할 수 없어 일단 조례를 통과하고 추후 보완 개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해 집행부와 합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비정규운동본부의 비판은 이해한다”면서도 “(노동계가 제시한) 원안을 관철시켜야 하는 저에게 (현실은) 너무나 견고한 벽이었고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며 “그래서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노동과 관련한 충북도의 벽이 높을 줄 몰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논란이 된 노동관련 조례안이 충북도 상임위를 통과하던 지난 17일, 이상정 의원을 비롯한 8명의 충북도의원은 ‘충북도의회 노동정책연구회’를 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회에는 이상정 의원을 비롯 최경천, 하유정, 육미선, 박형용, 이숙애, 박성원, 윤남진, 이수완 의원이 참여했다.

이상정 의원은 “'노동정책 불모지 충북'의 오명을 씻고 견고한 장벽에 구멍을 만들고 벽을 허물자 결의했다”며 “앞으로 힘을 모아 이번에 발의된 노동관련 2개 조례의 보완, 생활임금 조례 제정도 결의했다”고 SNS를 통해 결성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노동계의 비판은 현재 충북도의회에 집중된 상황. 이에 대해 노동계 한 관계자는 “핵심조항이 반영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이시종 지사였다”며 “그나마 노동계를 이해하고 대변하려 했던 도의원들과 노동계가 갈등하는 모습으로 비쳐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한 도의원은 “의욕을 가지고 조례제정에 참여한 도의원들만 상처를 받은 모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총대를 메려고 하겠냐”며 답답해 했다.

노동계와 충북도의회가 보수적인 충북도의 벽을 넘고 진전된 노동관련 조례를 생산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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