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명 시신 묻혀 있는 낭성면 호정리 도장골 훼손
인·허가해준 청주시, 시행청 모두 “우리책임은 아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된 청주형무소 재소자 및 민간인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청주시 낭성면 도장골. 이곳에 설치된 안내판이 쓰러져 있다.<사진 제공 : 충북역사문화연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집단 학살된 청주형무소 재소자 및 민간인들의 유해 매장지가 충북도 및 청주시의 사방댐 건설공사와 간벌작업으로 크게 훼손돼 유가족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민간인 집단 희생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표지판조차 바닥에 쓰러져 있고 땅도 파헤쳐져 유해가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시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산 22번지 도장골은 1950년 7월 초 청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 및 보도연맹원 등 100여 명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돼 묻혀있는 곳이다.

2005년 ‘과거사정리기본법’ 제정이후 출범된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 ‘유해매장지 추정조사사업’을 토대로 2007~2009년 유해발굴을 실시했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과 청원군수는 2008년 12월 도장골에 ‘유해매장지 표지판’을 세웠었다.

표지판에는 ‘위 장소는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발생한 청주형무소 사건의 민간인 집단 희생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충북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은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와 함께 청주시 낭성면 도장골, 영동 상촌면 고자리 등을 우선 발굴대상지로 꼽았었다.

 

유족회 측, “기가 막혀” 주장…책임 물을 것

 

도장골 일대는 지난 2017년 수해가 크게 났던 곳으로 충북도와 청주시는 사방댐(홍수를 막기 위한 인공댐) 건설을 위해 충북 산림환경연구소와 청주산림조합에 발주했다.

지난 3월부터 5월말까지 진행되는 사방댐 건설을 위해 청주산림조합은 나무를 자르고 땅을 파는 공사를 벌여왔었다.

유족회에 따르면 지난 4월 25일 도장골 유해매장지가 훼손된 것을 유족이 목격했고 이와 관련 4월 30일 청주시에 공문을 발송했으나 청주시는 5월 7일 도장골에서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사항만 요구했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지난 3일 도장골을 방문했을 당시 사방댐 공사로 일대가 파헤쳐져 있었고 ‘훼손방지’ 문구가 적혀 있는 안내판도 찌그러져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성토했다.

박 대표는 유해발굴 현장점검을 위해 도장골을 방문했었고 방문 당시 이미 유해매장지가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크게 훼손돼 있었다는 것.

박 대표는 “이곳은 한국전쟁 때 국가폭력이 자행된 곳이다. 지자체는 현장을 보존해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현장을 훼손했다. 이전에는 자그마한 봉분도 3개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이것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주형무소 유족회 측은 “도장골이 유해매장지임에도 청주시는 간벌사업 허가를 내줬고 현장을 무단으로 훼손했다. 유해매장지는 흔적을 찾을 수도 없고, 표지판마저 훼손됐다. 청주시에 유해 발굴 실시를 요구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청주형무소 재소자 및 민간인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매장지가 파헤쳐져 있다.<사진 제공 : 충북역사문화연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어

 

도장골 유해매장지 훼손과 관련, 현재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나 기관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결과 인가를 해준 청주시 산림과는 산 주인이 공사 인·허가 신청을 해와서 해줬을 뿐 책임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시행청인 충북산림환경연구소는 유해발굴지와 사방댐 건설현장은 30미터 정도 거리가 있어 유해매장지 훼손과 사방댐 건설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또 직접 공사를 진행한 청주산림조합은 허가가 나서 했을 뿐 도장골이 유해지라는 것도 잘 몰랐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셈이다.

청주시 한 관계자는 “청주시는 법상 인가를 내줄 뿐이고 실제 공사를 담당한 곳은 청주산림조합이다. 소유주가 원해서 인가만 내주었을 뿐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산림조합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공문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업무상 청주시는 나무 자르는 것만 책임이 있다. 땅이 파인 것은 사방댐 건설공사 때문이다. 사방댐 공사는 청주시 소관이 아니다. 도장골이 유해지라는 사실은 담당자가 바뀌어서 잘 몰랐다”고 설명했다.

충북산림환경연구소 관계자도 “유해지와 사방댐 건설 장소는 거리가 있다. 사방댐 건설로 마치 유해지가 모두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청주산림조합의 한 관계자는 “유해매장지라는 것을 청주시에서도, 조합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담당자가 바뀌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잘 안 돼 전달이 안된 것 같다. 청주시에서는 조합이 유족회랑 잘 상의해서 공사를 진행하라고 하는데 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난감해 했다.

청주시 자치행정과 담당자는 “앞으로 훼손된 지역은 원상복구를 하고 표지판도 다시 세워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청주형무소 유족회는 △유해매장지를 훼손한 공사담당자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공무원 문책 △유해매장지 발굴과 유해 수습 및 안치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재물 손괴죄’에 근거해 청주시장 처벌 등을 주장하고 있다. 박만순 대표는 “도장골이 유해매장지라는 것을 청주시가 몰랐을 리 없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4일에는 도장골에서 ‘도장골 훼손에 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후 청주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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