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기를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 그리고 벽초 홍명희를 일제치하 조선의 3대 천재라고 합니다. 이들 세 사람은 다 같이 이 나라 근대 문학사에 크나 큰 족적을 남겼지만 두 사람은 친일파로, 한 사람은 월북작가로 가는 길을 달리합니다.
이광수와 최남선은 젊은 날 독립운동에 참여해 활동하지만 끝내는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의 앞잡이가 됨으로 써 둘 다 자신의 천재성에 먹칠을 하고 맙니다. 그러나 홍명희는 ‘임꺽정’이라는 불후의 역작을 남기지만 월북작가라는 것이 멍에가 돼 금기의 대상으로 망각 속에 묻혀 왔습니다.
민족진영에서 등을 돌리고 돌아 선 이광수는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 시 소설 논설 등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글을 100여 편이나 넘게 발표함으로써 일제에 충성을 다 합니다. 다음은 이광수가 1943년 11월 5일 매일신보에 발표한 ‘조선의 학도여’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공부야 언제하면 못하리 / 다른 일이야 이따가도 하지마는 / 전쟁은 당장 이로세 / 만사는 승리를 얻는 다음 날의 일 / 승패의 결정은 지금으로부터 / 시각이 바쁜지라 학교도 쉬네 / 한 사람도 아쉬운지라 그대 부르시네 / 1억이 모두 전투배치에 서랍 시는 오늘 / 이 성전의 용사로 부름 받은 그대 / 조선의 학도여 지원하였는가 / 지원하였는가 / 특별지원병을 그대 무엇으로 주저하는가 / 부모 때문인가 / 충 없는 효 어디 서리 / 나라 없이 부모 어디 있으리-
일제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며 형제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글입니다.
해방57주년을 맞아 계간 ‘실천문학’이 특별기획으로 지난 주 발표한 친일문인 42명의 명단공개는 뒤늦으나마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과 시대를 넘어 지식인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를 교훈적으로 설명해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개된 면면을 보면 곽종원 김동인 김소운 김안서 노천명 모윤숙 백 철 서정주 유진오 유치진 이무영 정비석 조연현 주요한 채만식 등 해방이후 줄곧 우리 사회가 존경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들입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이들의 친일행각에 대한 준엄한 심판은커녕 거꾸로 미화하고 찬양하는 웃지 못할 우(愚)를 범해 왔습니다.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제 형제의 등에 비수를 꽂은 이들을 오히려 지도층으로 추앙해 왔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지지리도 못난 국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지금 와서 왜 새삼스레 ‘친일운운’인가 하는 의견도 없지 않겠지만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의 숙청은 시효가 지났다 해도 반 민족행위에 대한 역사적 청산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데 그 당위성이 있습니다. 프랑스가 2차 대전 뒤 위대한 프랑스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가차없는 대숙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엇보다 먼저 지식인들에 대한 응징을 첫 번째 과업으로 삼았던 점 역시 특기할 대목입니다. 4년여의 독일점령기간동안 나치에 협력했던 자 들에 대한 숙청은 자그마치 10만 명이나 달했습니다. 35년을 침탈 당하고도 단 한 명도 제대로 숙청하지 못한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광복 57년,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때마다 청산의 대상이 돼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득세를 해온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제라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실천문학의 친일문인공개는 역사를 바로 잡는 첫발을 내 디뎠다는 의미에서도 높이 평가해야 되리라 봅니다. 깨어있는 국민만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동서고금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